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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 거목 故 문동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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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레벨 더킹지킴이 ·Lv.1
2026.05.18 00:00· 257 · 0 개의 댓글 · 7 · 0

고인은 1921년 5월 중국 북간도 명동촌 태생이다. 독립신문 기자였던 문재린 목사와 여성운동가 김신묵 여사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형이 늦봄 문익환(1918~1994) 목사다. ‘동이족의 후예들을 밝히기 위해 일꾼을 기르는 곳’이라는 뜻의 명동촌은 독립운동과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다. 고인은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과 함께 자라며 민족과 나라에 헌신하는 삶을 꿈꿨다. 7세 때 목사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는 고인은 생전에 “목사가 되겠다는 것은 민족을 위해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했었다.

(문동환 목사의 부인 문혜림 여사와 아이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8년 국회의 5공비리특별위원회에 의해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에 찾아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며 항의하는 5.18 광주민중항쟁 유족회 등 관련단체 회원 109명을 당시 문동환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이 설득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계에서 은퇴한 뒤 1991년 미국으로 돌아가 아내와 노년을 보냈다. 성서 연구, 특히 민중 신학 연구에 집중했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6ㆍ15남북공동선언실현 재미동포협의회 미국위원장’을 맡는 등 통일 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문동환 목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3년 한국으로 돌아 와 ‘바벨탑과 떠돌이’(2012) ‘예수냐 바울이냐’(2015) ‘두레방 여인들’(2017) 등 최근까지도 책을 썼다. ‘인간이 소외되는 산업시대의 병폐’에 주목한 고인은 ‘소유를 넘어 공유하고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를 꿈 꿨다. 세월호 참사, 빈부 격차 등에 목소리를 내면서 한국 사회와 교회에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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